광양, 하동, 장흥, 고흥, 해남…. 매실 예약을 서두르라는 남도발(發) 메시지들이 올라온 지도 제법 여러 날이다. 5월 중순이니 이제 곧 풋풋한 청매실과 화사한 황매실이 남도 마을들을 플랫폼 삼아 전국 각지로 퍼져나갈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 입가심 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벌써 혀에 신맛 돌지 않으세요?” 물으면 “실없기는…” 핀잔들 하시려나.핀잔할 일 아니다.2000년 전 삼국지 시대의 짧은 에피소드다. 조조가 남쪽으로 군사를 이끌어 가는데, 그때가 여름이었나 보다. 군사들이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다. 전쟁은 고사하고 전장까지
4월 하순, 마지막 봄비가 내리는 곡우(穀雨)다. 겨우내 언 땅을 녹였던 우수(雨水)의 비가 내리고 나서 딱 두 달이다. 나무엔 물 차오르고, 참나무의 새 잎들은 연두색으로 산을 물들인다. 농부들이 씨 뿌리는 사이, 서해의 어부들은 조기잡이로 북적거린다. 경칩·우수를 지나며 잠자는 개구리를 들쑤셔 깨웠던 대지의 소란은 전조였다. 마지막 봄비를 기다리면서, 우리 산하는 소리 없이, 땅속 깊이 들썩인다. 도처에서 보기 드문 장관이 펼쳐진다.그 장관의 절정.부산 기장 앞바다에 출몰하는 은빛 용(龍).그야말로 4월의 진경(眞景)이다. 꾸물
4월로 접어들기 무섭게 경기도 용문으로 가는 열차표를 끊었다. 이미 며칠 전, 시내 대형마트에서 플라스틱 포장 속에 얌전한 두릅을 목격했다. 쌉쌀한 맛과 독특한 향, 그리고 아삭한 식감으로 ‘봄나물의 제왕’ 호칭을 얻은 두릅. 옛 문헌이 전하는 명성까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두릅나무’ 항목은 ‘해동죽지(海東竹枝)’란 20세기 초 문헌을 인용하며 이렇게 전한다. ‘용문산의 두릅이 특히 맛있다.’작년 5월쯤이었나, 양평 지나 용문역에 우연히 내렸다가 역 바로 앞, 어지럽게 선 장(場)에서 쇳내 알싸한 취나물을
1~2주 사이에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그리고 식당에 멍게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장 매대엔 탐스럽게 빨간 멍게가 통째로, 마트 진열대엔 투명 포장 속, 주황빛 멍게 속살이 빛을 낸다. 식당에선 회부터 국·찜까지 다양한 멍게 요리가 미감을 자극한다. 경계의 맛이랄까. 까딱 잘못하면 “이걸 왜 먹지?”란 반응이 나올, 비릿한 바다 향, 바다 맛이다. 그 위태롭고도 절묘한 맛에 탐닉하기 전, 멍게의 정체성이랄까 그런 얘기부터 잠깐.해삼·말미잘과 같은 취급은 NO!멍게는 해삼·말미잘과 함께 아이들이 곧잘 얕잡아보는 대상이다. 친구들과 놀
주꾸미는 여러모로 애매하다. 시장에서, 음식점에서 부르는 대로 ‘쭈꾸미’라 해주고 싶지만 국립국어원의 표준어 규정에 위배된다. 자장면 말고 짜장면도 표준어 아니냐고 따져도 소용없다. 주꾸미의 ‘주’를 이유 없이 된소리 ‘쭈’로 발음하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주꾸미는 계속 주꾸미여야 한다.이름뿐 아니라 크기와 생김새도 애매한 편에 속한다. 뼈 없이 흐물흐물한 연체동물 중에 두족류가 있다. 머리(두)에 발(족)이 달려서 두족류다. 그중에 발이 10개인 걸로 오징어·갑오징어·꼴뚜기가 있고, 8개인 걸로 낙지·문어가 있다. 주꾸미의 경우
시인 백석이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고 쓰고 있을 때 사랑한 사람은 ‘자야’였지만, 그전에 첫사랑이 있었다. 그저 ‘란’이라고만 줄여 부르던 여성. 란은 멀리 남해안 출신의 처자였고, 이십대 중반의 시인은 첫사랑을 찾아 여러 차례 통영에 내려간다. 그런데 만나지는 못했다. 어느 한 날, 절망한 백석은 낮술을 먹고 통영 충렬사 계단에 앉아 시를 쓴다. 그게 ‘통영(統營) 2’다. 사람도, 사랑도 가고 이제는 그 시만 덩그러니, 충렬사 근처에 검정색 시비(詩碑)로 남았다. 이 시의 첫 소절.
늦가을에서 초봄 사이, 이슬점이 0℃ 아래로 내려가면 흰 서리가 포슬포슬 내린다. 새벽녘 뜰에 나가 땅과 풀 위로 밤새 내려앉은 서리를 긁어모으고, 그걸로 꽃 한 송이를 만든다 치자. 그 소담한 모습…. 그 꽃을 보며 폭신폭신, 먹음직스럽게 생긴 만두 하나를 떠올린다면 정신 나갔다 할까. 각박한 21세기에는 정신 나간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천 년 전엔 그렇게들 상상했다. 서리 상(霜), 꽃 화(花), 그래서 상화. 고려 때, 만두를 그렇게 불렀다. 서리로 쌓아올린 꽃, 상화. 그게 천 년 전 만두의 이름이었다. ‘霜(상)’이란
소한(小寒), 대한(大寒)을 보내고도 추위가 여전하다. 영하 10도 안팎의 한파가 계속되는 이즈음이면 시베리아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던 한 시절을 떠올린다. 겨울의 문턱, 유라시아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로 향하던 열차의 좁은 객실. 네 명이 함께 쓰는 좁은 방에서 카스피해 서안 바쿠(아제르바이잔의 수도) 태생의 한 사내와 사흘간 숙식을 같이했다. 아침부터 맥주를 들이켜며 술 얘기를 나누던 중에, 그가 한국의 소주를 비웃었다.“그 정도면 칵테일이네. ‘사마곤’이나 ‘차차’ 정도는 마셔줘야지!”“사마곤? 차차? 그렇게 대단한
과메기에게 올해만큼 드라마틱했던 겨울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11월 중순, 그러니까 한반도에 찬 서리 내릴 무렵 과메기의 본고장 포항을 강타한 지진 얘기인데, 그 얘기 전에 먼저 해결해둘 게 있다. 지진으로 매출이 떨어지자 청와대까지 직·간접적인 마케팅에 나설 정도로 ‘국민 별미’인 과메기이지만, 도대체 “그 과메기란 게 무엇이냐”를 두고 겨울의 초입마다 술꾼과 미식가들의 논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겨울, 새로운 이유로 또 해묵은 이유로 국민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과메기는 무엇일까. 조금 멀리서 시작해 보자.
뉴트렌드(New trend)에 대한 불신과 미식(美食)에 대한 욕구를 동시에 품고 지난 10월 14일 서울 동대문을 찾았다. 주말이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뒤쪽으로 ‘밤도깨비’란 이름을 내건 야시장이 열리는데, 그 야시장의 주요 테마가 푸드트럭이란 얘기를 들었다. 잦아드는 듯했던 푸드트럭 얘기가 요 몇 주 TV와 신문에 출현하는 걸 보면서 그 실체와 맛이 궁금했다.바람 좋은 시월의 토요일이었다. 오후 5시 DDP 앞, 조그마한 아트 부스에 들어가 한 젊은이에게 물었다.“근처에 푸드트럭들 모인 곳이 있다던데요?”“아, 건물 뒤쪽
소주의 압도적 위세와 인기는 누구나 인정하지만 아쉽게도 우물 안 얘기다. 와인, 위스키, 코냑, 보드카, 데킬라, 배갈, 사케 등 동서양의 강자들이 특유의 맛과 브랜드 스토리로 즐비한 세계 주류시장에서 한국의 소주는 마이너일 뿐이다. 표준화된 공정으로 대량 생산되는 희석식이든,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증류식이든 다르지 않다. 해외에서도 소주는 기껏해야 한국인들의 기호품이기 십상이다.외신을 통해 전해오는 소주 관련 뉴스들은 그래서 대개 옆길로 간다. ‘강남스타일’이 뜨고 가수 싸이의 사진이 병 라벨에 붙고 나니 해당 소주의 해외 판